매일 글

조기를 구우면서

*!*b 2022. 10. 15. 00:18

얼마 전에 할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1년이나 지났다.

솔직히 말하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첫번째 제삿날에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없었다. 인삿치레만 했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다.

빨간색 십자가가 새겨진 고깔 모양의 삼베에 돌돌 묶인 모습이 할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물론, 할아버지도 생전에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지만 고모들의 뜻대로 그렇게 됐다. 죽어서 자식들한테 제삿밥 못 얻어먹을까 전전긍긍했던 노인네인데 마지막에 당신 곁에 남은 건 십자가였다.

기독교식으로 마지막을 모셨으니, 제사도 없는 것이 됐다. 원래 우리집은 제사를 모시고, 지내던 집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고모들이 기독교인이 되면서 여러가지로 일이 꼬였다. 제삿밥 찾는 할아버지는 주님 곁으로 가고, 엄마가 26년째 모시고 있는 친할머니 제사는 계속 지내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여기에는 재산 문제가 끼어있다. 할아버지는 평생 가꾸던 논 천평을 넷째인 아빠에게 증여했다. 가치로 따지면 삼천도 안되는 소박한 규모의 재산이다. 다만 대대로 일군 땅을 받았다는 상징성은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있었던 할아버지가 딸만 둘인 넷째 아들 집에 논을 물려주신 게 늘 의문이긴 했다. 윤씨 성을 가진 아들 손주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이 손자를 얻었다는 말에 기뻐서 쌀을 지고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가 왜 우리집에 땅을 남겼을까.

답은 제사였다. 우리집이 할머니 제사를 오래 모셨고, 할아버지가 낳은 6남매 중 제대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집이 우리 밖에 없어서 할어버지 제사를 지내줄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고모들은 나보다도 아버지를 몰랐던 건지, 알았지만 무시한 건지, 아님 본인들의 뜻이 있어서 그랬던 건지, 할아버지에게 십자가를 둘러버렸다. 논을 넷째에게 준 게 심통이 났을 거다. 기독교인들이 꾸역꾸역 할머니 제사를 요구하는 이유도 그런 못된 심술일 거다.

그래서 나는 제사가 싫었다. 할머니고 할아버지고 그냥 싫었다. 모시던 제사를 안 지내면 후손들이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그런 미신을 믿는 엄마도 싫었다.

할아버지의 음력 기일이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그저 아무것도 안하고 지났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엄마는 할아버지 기일 며칠 전부터 불안해했고, 나는 미신 따윈 믿지 말라고 엄마를 꾸짖다시피 했다.

그러다 할아버지 기일이 됐다. 제사 준비는 당연히 하지 않았다. 기독교식으로 돌아가셨으니까, 기도나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다.

밤 8시께, 기일이라는 생각이 잊힐 때쯤 아직 퇴근하지 않은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조기 세 마리를 구워놓으라고 했다. '아 제사를 지내려고 그러는구나' 직감했다.

욕을 하면서 조기를 구웠다. 내가 왜 이 밤에 이걸 구워야하는지 짜증이 났다. 제사가 뭐라고 이 냄새나는 걸 구워야 하지. 어거지로, 대충 조기를 뒤집었다.

화는 곧 누그러졌다. 배, 사과, 곶감, 대추, 고기 등 제사를 지내려고 장을 잔뜩 봐온 아빠의 모습을 보니 치솟던 화가 가라앉았다. 아빠도 할아버지를 꽤나 미워했는데, 신경이 쓰였구나.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는 자식 마음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미워도 미워지지 않는 게 천륜이었다.

오늘 남은 조기들을 구우면서 할아버지의 첫 제삿날 생각이 났다. 조기는 유난히 잘 구워졌다. 그날도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예쁘게 구워졌을 텐데,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