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 대해서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한다. 하물며 무리 생활은 하는 인간은 울타리가 없어서는 안 된다. 분명한 진리다. 무리 없이 인간은 없다. 좋거나 싫거나 풀기 어려운 관계의 실뭉치 속에서 살을 맞대며 사는 게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수많은 인간의 언덕 중에 가장 가까운 게 있다. 가정이다. 옛날부터 여자와 남자가 만나 자식 낳고 사는 가정을 '정상'이라 여겼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느냐, 자녀의 수 혹은 유무는 시대에 따르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결혼'이라는 형식을 갖춘 뒤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사는 게 전통적인 모습이다.
최근에는 현실 문제나 개인의 신념으로 늦게 결혼하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때는 대게 '어린'나이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과연 결혼 결정까지 순수한 본인의 의지만 있었을까? 물론 자유연애를 통해 상대를 고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대 초반의 결혼이 대거 이뤄진 시대 상황으로 볼 때, 개인의 결혼 결정에 사회적인 압박이 개입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개인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은 이른 나이에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사회에 이바지할 아이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의 압박으로 꾸려진 가정들이 과연 정상적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는 아이를 낳으라 할 뿐, 키우기는 모두 개인에게 지웠다. 아이 하나 기르기 위해선 온 마을이 돌봐야 한다는데, 사회가 발전하며 공동체의 개념은 흐려지고 아이 키우는 일은 모든 일은 처음 겪어보는 '개인'에게 내맡겨졌다. 의지 없이 남들 따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은 개인이 아이를 잘 키웠을리 없다.
결과는 비극이다. 자녀와 교감하는 법을 모르는 부모들은 성숙해진 자녀와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자녀는 이제와 간극을 좁히려 하는 부모가 귀찮기만 하다. 애착관계 형성에는 때가 있다. 유대감을 만들려 해봤자 모두 늦은 일이다.
겉치레가 마음을 채우는 것은 한순간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겉치레를 멈출 수 없다. 지속적이지도 않고 내 삶을 지탱할 만큼 든든하지도 않다. 정답을 가까운 데서 찾을 수 없으니 자꾸 멀리 가는 거다. 텅 빈 마음에 돈을 담으려 한다. 이게 결혼이 강요된 세대의 유산이다.
가정은 달라져야 한다. 가정을 꾸리는 법부터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법까지 ‘배워야’한다. 본능에 따라, 압박에 따라 세운 가정은 바퀴 빠진 수레 같다. 본래 아무것도 실지 못하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억지로 짐을 실어 나르면 나도 모르는 새 다 도망가 버린다.
사회는 국영수보다 중요한 가치들은 가르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이미 모든 짐을 잃어버린 뒤다. 우리가 배울 것은 나의 짐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실어나르는 법이지, 잃고 나서 대처하는 법이 아니다. 가정에 대한 교육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