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

11.23

*!*b 2020. 11. 23. 23:39

1. 지옥의 '3줄 요약'
바쁜 세상이다. 그래도 아무리 바빠도 남이 정성스레 쓴 글 앞에서 "3줄 요약 쫌"하는 무책임한 댓글은 좀 너무하지 않나. 모두가 3줄 요약 같은 '간단은 것'만 요구하고 전하는 상황은 내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 "가짜뉴스"도 같은 맥락아닌가. 자극적이며 짧고 직관적이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글의 체신을 한없이 낮춘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한다. 사람들이 짧은 호흡의 글을 원한다면 써야하는 게 아닌가. 글의 주권은 쓰는 사람에 있을까 읽는 사람에 있을까.
아마 글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팔리는 글을 쓸 수밖에 없을 거다. 먹고 사는 일이 먼저니 말이다.

2. 이름 없는 풀잎사귀 하나라도 볼 수 있는 여유
서정주의 <가벼히>에는 애인 만나러 가는 길에 '무슨 풀잎사귀'를 보며 '한 눈을' 파는 모습이 그려진다. 여기서 한 눈 파는 모습을 바람난 것쯤으로 해석하면 이 시는 삼류 중의 삼류 시가 되어버린다.
바람이 아니라, 당신과 오래 살(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갖는 '여유'의 마음으로 이해하면 이 시가 주는 삶의 철학에 닿을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나와 나 사이도 여유는 늘 필요하다. 바쁘더라도 풍경을 둘러볼 수 있는 느긋함이 갖는 게 오래가는 비결이다.

3. 글 600개가 넘다.
조잡하고 단편적인 글들이지만 600개가 넘었다. 누군가는 '좋은 글' 하나 없는 블로그라고 혹평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언가를 꾸준히 600개가 쌓일 때까지 해본 경험이 처음이라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는 좋아하는 젤리도 20개 먹고 질려버리고, 좋아하는 드라마도 5번 이상 다시본 적도 없고, 좋아하는 노래도 100번 이상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반복에서 오는 지겨움을 잘 극복하지 못 한다.
쓰지 않으면 시들어 죽어 버릴 내 머리 속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깨닫고 있다.
옛날보다 지금이 나은 이유는 일개 인간 하나도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점 하나로 족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