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

5.10

*!*b 2021. 5. 10. 22:50

할아버지가 섬에서 올라오셨다. 거동이 불편하신데 넘어지셔서 이마가 찢어졌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혼자 되셨다. 그러다 막내 삼촌네(삼촌 부부, 딸, 아들)가 섬으로 가 할아버지를 모셨다. 전 재산을 준다는 할아버지 약속 때문이었다. 1년도 채 안 돼서 할어버지는 또 혼자 살게 됐다. 삼촌이 바람이 나서 삼천만원이 든 통장을 들고 섬을 떠났기 때문이다.

십년이 지난 이야기다. 삼촌은 한 동안 안 보이다가 다른 남매들에게 용서를 받았는지 어쨌는지 가족 모임에 오기도 하고 은근슬쩍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지금은 섬에서 오신 할아버지를 직접 간병하고 있다. 간병한지 이틀만에 온갖 짜증과 신경질을 내면서.

최근에는 대소변 실수까지 한다는데, 이와중에도 요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한단다. 간병이 좀 쉬운 일인가? 그 죄를 저질른 삼촌도 이틀만에 제 죄를 싹 잊고 신경질내고 있는데 받은 것 없는 자식은 두말할 것 없다. 긴 병에 효자 없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생각이 도리에 어긋난다는 걸 안다. 하지만 할아버지만 생각하기에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해야할 일이 산적해있다. 아픈 노인 하나 두고 치고 박기엔 미래를 위해 할 일이 너무 많다.

아프고 늙은 사람에게 무조건적 연민을 느끼고 희생해야하는 게 공동체의 윤리일까.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