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

힘들 때면 펜을 들었다. 아무도 가르쳐준 적 없지만 누구에게 말하기보다 혼자 주욱 적어놓고 마음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벌어진 상황에 늘 당하기만 하던 입장이었던 내가 다스릴 수 있던 건 마음밖에 없었다.
장점은 아무도 내가 그렇게 불순한 마음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과 속내를 털어놓은 상대가 다른 이에게 그 비밀을 전하진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그 글을 봤을 때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그때처럼 지금도 힘들면 글을 쓴다. 블로그에 쓰는 건 그나마 정제된 글이다. 남들이 봤을 때 도덕성에 흠집났구나 느낄 만한 글들은 다른 곳에 적어둔다. 아니면 머리 속으로 쓰고 날려버린다. 너무 나쁜 생각들을 굳이 세상에 꺼낼 필요는 없으니까.
품고 있는 불만을 다 터놓고 얘기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해서 한번 해보기도 했다. 회사에서 상담할 때 처우가 불만족스럽다고 얘기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애처럼 투정만 늘어놨다는 생각에 후회됐다. 선배가 회사내규를 정하는 사람도 아닌데.
불만 표현도 사회 생활의 한 부분인데 나는 불만을 표시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좀 선을 넘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불만이 쌓이면 제때제때 얘기하면서 소통하면서 풀어내기보다 한번에 잔뜩 쌓아놨다가 문 닫듯 마음을 닫아버릴 때가 많다. 불만을 얘기한 뒤에 어색한 공기가 달갑지 않아서 그렇다.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굳이 밑바닥을 드러내고 싶지도, 어떤 표현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모두 다 얘기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의 한 종류라고 하던데 나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