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끝, 2021년도 끝
#1 완벽한 균형
서울대 청소 노동자 사망 관련 르포로 시작한 인턴 생활이 서울대 청소 노동자 사망 산재 인정으로 막을 내렸다. 31일 마지막 기사는 그간 사회적으로 쉬운 단순 노동이라 여겨졌던 청소 노동이 산재 인정으로 그 과중함을 인정받게 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 여름 생각하면 아직도 짜증나고 막막했던 상황이 선명하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2 소기의 목적 달성
여전히 기사 쓸 때마다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힘들다. 쓰면서도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항상 두렵다. 나는 왜 다른 기자처럼 생각하고, 묻고, 쓸 수 없는지 자괴감이 든다.
갑자기 어떤 기사를 써라하고 지시가 나면 손이 덜덜 떨린다. 밑천이 드러날까봐 항상 무섭다.
그래도 인턴 생활하며 한 가지 남은 건 '기사'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는 것. 보기 보다 쉽지 않은 일이고 세상 일을 풀어낸다는 건 내 마음 속 말을 풀어내는 일과는 비교도 안 되게 어렵다는 것. 그런 걸 읽어내기 위해서는 항상 공부하면서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것.
발제 못 할까, 기사 마무리 못 할까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 고통받지만 일이 닥치면 어떻게든 해내는 재주가 내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 한해 점검
올해에 꼼꼼하고 전략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여전히 닥치는 대로 살았다. 대신 취직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건 이뤘다.
#4 내년엔 연명하는 삶이 되질 않길
너무 힘들어서 가끔 대충 일했다. 잘리지만 않을 정도로 대충 일했다. 대충 했는데도 여전히 피곤했고 심지어는 찝찝함마저 남았다. 시간만 떼우면서 일하는 건 내 자긍심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일을 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걸 알았다.
안 잘릴 정도로만 일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연명하는 삶을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지도 않은 사람이 가는 호흡만 잇는 삶에서 의미를 찾을 리 만무하다. 변명을 하자면 출근 시간 앞뒤로 발제하랴, 발제 마무리하랴 근무시간보다 더 일을 하다보니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좋은 마음 가짐이 들어설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연명하는 법을 택했는데 이 끝에는 죽음 밖에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잠시 잠깐 편한 요행이 가져올 불행은 나를 완전히 망쳐버릴 수도 있다.
#5 주변 얘기는 듣고 버리자, 선택은 내 몫이다.
동생이 하도 어떤 드라마가 재밌다고 추천을 해서 봤다. 재밌었다. 보다가 하도 결말이 궁금해서 동생에게 물어보니 주인공이 마지막에 죽는단다.
결말을 알고 나니 재미가 급감했다. 저 사람들이 아무리 사투를 벌여도 결국 죽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 둥 마는 둥하다가 맨 마지막화부터 먼저 봐버렸다. 보니까 해피엔딩이었다. 동생이 거짓말을 한 거였다.
동생이 결말 스포를 안 했더라면 진짜 재밌게 봤었을 텐데 동생 말만 듣고 '과정'의 재미도 '결말'의 재미도 모두 놓쳤다.
미래가 확정됐다고, 훤히 알고 있다고해서 행복한 건 아니구나 싶었다. 만들어가는 재미도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