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쓴다는 건 무엇일까, 때때로 떠오르는 물음이지만 여전히 명쾌한 답은 없다. 한국은 인구도 많지 않는데 인재들이 너무 많다. 글쓰기는 문턱도 낮아서인지, 잘 쓰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 학교 다닐 때는 또래의 글을 읽어볼 기회가 많았다. 특히 글쓰기로 문학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친구들의 글을 꼭 읽었다. 그 나이때 선생님의 칭찬은 재능의 척도였으니 그 친구들의 글재주를 확인해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어중간한 재주는 지금이나 그때나 같은데 나는 거의 글쓰기 대회에서 2등이나 3등이었다. 일단 상이니 기분은 좋은데 상 앞에 붙은 '우수'라는 말이나 '장려'라는 단어는 늘 아쉬웠다. 그 단어들이 내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등이 되지 못한, 결핍된 경험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 써도 잘 쓰는데 왜 쓰겠나. 요즘은 자만심에 취해있었다. 일단 24살까지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는 글쓰기라는 취미를 이어온 것과 그 취미를 꽤나 발전시켜서 잘 쓰게 된 것. 나는 24살 중에 가장 많이 쓰고 또 잘 쓴다고 자부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풀어낼 수 있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글쓰기 자원을 많이 마련해놨기 때문이다. 학과 수업+교양까지 들으니 얇고 넓게 때로는 깊게 한 주제에 대해 다룰 수 있게 됐다. 어쨌든 4년 내내 다룬 전공이니 할 수 있는 말과 생각이 많아지고 커졌다. 문제는 나와 같은 조건이 아니면서 나만큼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의 존재다. 자기 전공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잘 쓰는 건지 질투가 난다. 그런 사람의 글을 볼때면, 상 앞에 우수나 장려라는 제한이 붙어 내 기쁨을 반으로 쪼개놓았던 기분을 다시 느낀다. 아, 여기에 '떨림'도 한 방울 더해야한다. 좋은 글을 질투도 낳지만 마음이 좀 떨린다. 떨릴 게 그렇게도 없나 싶지만 좋은 글은 두근거린다. 그 떨림이 밥그릇을 뺏길 수도 있다는 불안인지 좋은 글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흥분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자극이든 나에겐 천행이다. 우수와 장려라는 단어가 그랬듯 결국 나를 더 자라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