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가족이나 편한친구에겐 상처가 될 법한 말도 쉽게 던지고는 한다. 주변에 있을수록 더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대해야하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은 즐기고 싶다는 심리가 반영된 듯 싶다.


어느 노래를 듣다가 꽃히는 가사가 있었다. 음악은 밝고 발랄한 분위기였는데 나에겐 그 가사가 묘하게 슬프게 들렸다. 자세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내 편이 맞냐고 묻는 가사였다. 너 정말 내 편이 맞냐고 반복해서 묻는 것이 그 신나는 댄스곡과는 안맞게 슬프게 느껴졌다. 왜 그랬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더니 내 편이냐고 물어볼만큼 '처절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 상황이 나와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관계 맺기는 나를  수 백 번 좌절하게 만든다. 내가 놓으면 끊어질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나를 진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혼자가 되지않기위해 영양가없는 관계를 지속한다. 지속 해야만 한다. 혼자는 무서우니까. 우리 사회는 혼자인 것 또한 용서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외로움' 감정은 타고 태어난 본래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된 결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 그리고 국가는 거대한 관계 맺기의 종결이니 말이다. 인간이 관계 맺기를 학습받지 않았더라면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을테니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선 관계 맺는 것을 사회인으로서의 미덕이라는 이름 하에 주도한 것이 아닐까?


재밌는 상상을 뒤로하고, 미시적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 관계 맺기는 학창시절의 모든 고통의 원천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 영향이 매우 컸다. 세상에 타인의 섣부른 언행을 듣고도 홀가분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말이 내 컴플렉스를 건드렸을 경우에는 더욱 날카롭고 깊숙히 내 마음 속에 박혀버린다. 가까울수록 내 컴플렉스를 잘 알기 마련이고 사이가 급속히 각박해지면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리게 된다. 친한 친구사이나, 자매형제남매 사이, 부모와 자식사이가 그렇다.


관계 맺기란 사회 구성의 근본이 되면서 인간에게 내던져진 가장 어려운 숙제인 듯 싶다. 도태되기 싫은 인간의 처절한 고군분투가 관계맺기에서 드러난다. 나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와서 인간관계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다. 더 이상 억지로 마음을 맞출 필요가 없었고 뒤틀리면 뒤로 내빼며 쉽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 관계는 스미듯이 조심스럽게 맺어졌다. 사회활동을 하는 인간은 관계 맺는 것에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느꼈다. 그러면서도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주저했던 나는,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의 이기적인 존재들로 부터 받은 상처가 무섭게도 나를 성장시켰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공로라기보다는 인간관계에서의 철저한 고독에서 주저하지 않고 내면의 나와 만나려고한 내 노력의 대가라고 본다.


요즘은 무례한 직설적인 언행이 '팩트폭행'이라는 재밌는 단어로 포장되었는데, 나는 그러한 세태가 조금은 무섭게도 느껴진다. 관계맺기의 고독과 고립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될 수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처로 남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타인이 가지고 있는 고통에 대해 조금은 무겁고 경건하게 생각해봐야 관계 맺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석의 어려움  (1) 2017.05.29
나의 작은 저항  (0) 2017.05.28
이성(理性)에 대한 동경  (0) 2017.05.26
빠른 하루  (0) 2017.05.25
지식의 깊이  (0) 2017.05.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