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는 물을 수 없는 물음이 있다. 대답이 뻔해 물어봤자거나 돌아올 대답이 감당할 수 없을 때다. 사실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각자 자신의 잣대로 한 번 쯤은 답을 내린 뒤 상대의 의견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묻고는 한다. 답은 내 안에 있지 타인의 입에 달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속으로 거의 백퍼센트 확신하고 있어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물어볼까 고민하지만 그냥 고민에서 그친다. 대답을 듣는 일이 무섭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답이 아닐까봐 혹은 내가 생각한 답이 맞을까봐. 그런데 대답들 듣는 일이 무섭다고 묻지 않아버리면 사이가 멀어진다. 나 혼자 미움섞인 오해를 만리장성처럼 쌓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묵은 해결을 미뤄둘 뿐, 방안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블로그를 시작했던 게 2017년이었고, 내가 2학년이었고, 21살이었던 때였다. 23살까지만 해도 몇 년도에 내가 무엇을 했고, 어디를 갔고 머릿속으로 착착 정리가 됐는데 스물넷이 되니 그 기억이 그 기억같고 저 기억이 저 기억같다. 제주도에 언제 갔더라? 우즈벡은 재작년에 갔었나? 하고 있다. 뭐랄까. 이십대 초에는 새로웠던 경험이 더 이상 특별한 경험이 아닌 삶의 부분이 되며, 날이 갈수록 그만그만한 기억을 쌓아가니 분간하기가 어려워진 듯싶다. 늘 새로운 걸 바라는 건 인간의 욕심이겠지만, 비슷한 추억 된다는 핑계로 감흥까지 잃는 건 꽤 슬프다.
"그런 거 필요없어" 늘 나를 다잡는 말이다. 더 많이 갖고 싶은데, 갖고 싶어 욕심나 죽겠는데, 무엇인가 내 욕심을 가로막을 때 나는 필요없다 거짓을 외고는 했다. 그래야만 상처난 자존심을 달랠 수 있었고 스스로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집은 내 욕심을 품기엔 풍족하지 않았고, 내 능력도 욕심과 별개로 존재했다. 한국인에게 겸양의 미덕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보다 과한 '아닌 척'이 습관으로 뱄다. 내 욕심이 드러나는 것도, 그 드러난 욕심이 실패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게 싫었다. 우스운 꼴 말고 멀끔한 모습으로 나서는 게 제일 나 답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완벽하지 않다면 절대로 세상 밖으로 내지 않는 게 철칙이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내 결핍이 들통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
유난히 여름나는 일은 어렵다. 날씨 문제는 둘째쳐도 살면서 부딪쳐야하는 문제들이 한꺼번에 닥쳐오는 중이다. 걱정이 일을 해결해줄 수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머리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석차가 공개됐다. 35명 중에 12등이다. 4.22가 어떻게 중간일 수 있을까... 등수에는 연연치 않으나 등록금에는 심하게 연연하기에 석차를 보자마자 짜증이 몰려왔다. 게다가 학교 장학금 정책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장학금 신청도 하지 않은 과거의 나에게 화가 났다.졸업도 문제다. 남은 학점은 13학점. 적어도 5과목은 들어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머리가 아파 죽을 것 같다. 거기에 토익까지 봐야하는데 쓴웃음만 나온다.취업은 또 어떤가. 이대로는 정말 사회에서 도태될수도 있겠다는 아찔한 생각이 스쳤다. 그래 자신있는 ..
늙은 아빠에게 쓰는 편지는 어떤 느낌일까. 나는 왠지 짠했다. 엄마는 그 가난하던 시절에 할아버지께서 학교 다니라며 새 자전거 사준 일을 자랑처럼 늘어놓고는 하신다. 엄마의 오빠인 4대 독자에게는 중고 자전거를 주어다 주셨다는 말까지 잊지 않으셨다. 어느 순간 나는 엄마가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게, 그 새 자전거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받은 것도 없이 홀로 도시로 와 온갖 고생을 다 했으면서도 부모 원망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엄마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엄마의 사랑의 비해 내 사랑은 보잘 것 없어 보인다. 마음을 돈으로 치환하려했던 시도는 참 천박하다.
마땅히 지옥은 가해자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벌을 받는 게, 시비를 가릴 필요 없는 진리다. 법은 타인에게 상처를 준 이들에게 일률적인 절차로써 엄징할 수 있는 장치이다. 피해자들을 뒤늦게나마 위로해주고, 가해자를 처벌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바와 같이 법은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주고 그들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명심해두어야할 점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권력자들의 어불성설은 그때나 지금이나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권력자들은 법을 이용해 피해자들의 입막음을 시도한다. 피해자들은 범죄에 한 번 상처입고, 가해자에게 기울어진 법에 두 번 상처 입는다. 또한 성범죄 피해자같은 경우는 사람들의 편견어린 입..
박원순 시장이 죽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각종 비극은 영원히 베일에 쌓였다. 박원순이 죽은 이상, 그가 왜 죽었는지는 모두 추측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누가 박원순 시장이 죽을 것이라, 그것도 자살로 갑작스레 모든 말을 아낀 채 죽을 것이라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본인조차 예상치못한 말로 였을테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중들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상태이다. 이럴 때 나는 어떤 글을 써야할까 생각한다. 사인으로서 말고, 대중에 말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기자는 그런 직업이고 나는 그 일을 앞으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글을 쓰기 어려워진다. 성범죄자인 박원순은 죄인이고 자살은 스스로의 평안을 위한 면피 행위며 피해자를 두 번 죽인 2차가해다라고 말하기도, 공소권없음으로..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너무 급하면 잊게 되는 격언인데 나는 급하더라도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일을 정리하고 차례대로 해결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많은 현대인들은 이 사실을 잊고 있는데, 일단 처리해야 할 일이 주어지면 정신없이 일을 소화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급한 현대인들의 습성은 미디어 소비습관 변화로도 확인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편찬해낸 다량의 글을 찾아보고 의견을 비교하고 내 생각을 수립하기 보다 (전문성이 의심되는) 누군가, 이를테면 유튜버나 블로거가 추려놓은 내용을 전부라 믿고 그것만을 습득한다. 블로그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데 원하는 내용을 찾아보는 노력이라도하기 때문이다. 반면 유튜브는 확증편향으로 가득차 답이 없다. 지식을 습득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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