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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글

인사철

*!*b 2023. 12. 19. 22:10



회사와 나를 분리하려고 무던히 애써왔다.

회사가 삶의 중심이 되는 건 괴로운 일이다. 내가 회사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는 날 바라봐 주지도 않고, 심지어는 안중에도 없는데 나만 애타고 진심을 쏟아봤자 결론은 뻔한 비극이다. 이런 슬프고 진부한 사랑이야기의 비극적인 조연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 회사와 나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왔다.

이 간극을 좁혀야 되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인사철이다. 무엇을 하려는 열정으로 가득한(또는 그렇게 보이는) 새사람이 들어온다. 물론 내 윗사람이다. 난 회사에서 말단 중에서도 말단이다.

회사에 들어온 지 햇수로 삼년이다. 첫해는 열정을, 다음해에는 의지를 잃었다. 솔직히 말해 회사 일을 바라보는 나는, 육체뿐인 시체다. 처음부터 내가 월급루팡이나 했던 건 아니다. 회사가 내가 가진 열정과 의지를 하나하나 꺾고 잘근잘근 씹은 탓이다. 난 한때는 모든 걸 다해 바쳤고, 이제는 고갈된 청춘이 됐다. 나도 내가 이런 모습이 됐다는 게 정말 슬프다.

나는 먹고 사는 데 급급하다. 블로그에서 사용하던 이름을 바꾼 것도 내가 적은 회사를 향한 건전한 비판 혹은 뒷담이 혹여나 문제를 일으킬까 걱정돼서다. 회사에 대한 일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역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 거다.

이렇게 나는 열심히 회사와 멀어지려고 하는데 현실는 녹록지가 않다. 까라면 까야하고 쓰라면 써야한다. 붙으라고 하면 붙어야 하고, 열심히 하라고 하면 척이라도 해야 한다.

인사철 기운은 정말 한때다. 누굴 위한 놀음인지 모르겠다. 밑에 사람만 장단 맞추느라 뼈가 삭는다. 회사가 내게 기대하는 게 없다는 걸 뻔히 아는데, 투명한 거짓말에 왜 나는 연기를 해야하는지 자괴감이 덮친다. 이또한 지나가리라, 외쳐보지만 괴로운 마음은 사라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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