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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일기

서막이 올랐다

*!*b 2021. 3. 24. 22:52

 

절반의 사랑

뭐든지 적당히, 적절히, 담갔다 빼도 금방 말라 티 안 날 정도로. 내 신조는 '절반의 사랑'만 허락한다. 마음 놓고, 마음 다 주고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이 내게는 제일 힘들다. 마음 주는 일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인생을 모두 걸지 않는 까닭은 글을 '덜' 좋아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만으로 가지고는 먹고 살 수 없음을 익히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반만 사랑하는 일이 더 힘들다. 인간은 자신 앞에 있는 장벽은 모두 허무려고 든다. 하지 말라는 건 더하고 싶고, 눈 앞에 보이는 장애물은 치우고 싶다. 나도 그렇다. 사실 나는 한번쯤은 가진 모든 것을 던져 인생을 베팅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득차 있다. 내 안에는 겁쟁이와 배짱이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취업준비 같은 거 

고민하지 않았다. 남의 말인줄 알았다. 대학생활 내내 뜬구름 잡는 상상만 했지 속세의 현실은 고민하지 않았다. 학문의 공간에서 현실을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람은 일을 해야한다. 목적은 돈뿐만이 아니다. 일을 하면서,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껴야하고 존엄을 일에서 찾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리다. 우리 속담에는 이런말도 있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생각해보면 '노동'이 인간을 구속하는 건 자본주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농경사회부터 '노동'은 언제나 중요했다. 그러니까 나는 인간의 가치를 만드는 '노동'할 생각을 멀리하며 대학내내 신선놀음만 했다는 소리가 된다. 순리대로 살자 했으면서, 거스른 꼴이다. 


이력서를 두 번 넣었다

경향신문 하나, 뉴닉 하나 넣었다. 경향은 이력서 광탈, 뉴닉은 2차 과제전형에서 고배를 마셨다. 속이 쓰렸다. 경향은 원래 떨어질 것 같았고 뉴닉은 준비할수록 욕심이 생겼다.

뉴닉 회사문화가 마음이 들었다. 내 이름으로 글을 쓸 수는 없어도 좋은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읽는 글이라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뉴닉 대표가 나오는 영상, 구글링하면 나오는 뉴닉 직원들의 SNS를 모조리 살펴봤다. 스토커는 아니고 그냥 취업이 간절해서 저절로 보게 됐다. 모두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라 여기서 일하면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스타트업이라 월급이 만족스럽지 못할 게 뻔했지만 원하는 기업이라면 이백만 받아도 좋았다. 노동가치=소득으로 평가된다고는 하지만 요즘 비혼세대는 결혼을 안 해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사내문화나 일의 만족도가 소득의 크기 만큼 중요해졌다. 나도 '이 일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가'가 직업 선택에 있어 돈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라고 본다.

2주 사이 두번의 탈락. 이력서 쓰느라, 자소서 쓰느라, 결과를 기다리느라 까맣게 타버린 내 마음을 감히 두 글자로 정리할 수는 없다. 특히 경향 5년 구독자로서 배신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불매할까'했지만 1년 구독을 약속한 걸 깨닫고 '그래 일년 더 하자'고 다독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원래 돌려 돌려 돌려 쓰는 사람이다. 웬만하면 너무 개인적이거나 안 좋은 얘기는 피하려고 한다. 빛나지는 않더라도, 후진 나를 보여주는 건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양수업에서도 영어회화 한 번을 안들었다. 후진 회화실력을 들키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내 친구들은 보고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나름 폼생폼사의 삶을 즐겨왔다. 무식이 들킬 것 같으면 말을 않고, 약점이 들킬 것 같으면 나서질 않는 '회피형'의 전형이 나다. 

이제는'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솔직해졌지만 어쨌든 멋있게 살고 싶다는 꿈을 버린 건 아니다. 그래서 취준일기 이런 건 쓸 생각도 안 했다. '학생에서 바로 멋진 직장인이 되었습니다'하고 바로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취준일기, 질퍽질퍽하고 꾸질꾸질한 스토리가 예상되지 않나. 그래서 쓰기 싫었다. 


시작이라고 생각하려고

주변에는 갓 대학 졸업하거나 나처럼 유예 중인 친구들 뿐이니 함부로 묻기가 어렵지만, 적어도 1년 정도는 취준에 몰두하는 듯 보인다. 1년 정도면, 다시 경향 공채에 도전해볼수 있고, 뉴닉에도 채용이 뜰 수도 있다. 끝난 건 아무 것도 없다. 게다가 채용하는 곳은 경향과 뉴닉이 아니어도 많다. 두번의 탈락으로 1) 글을 쓰는 곳 2) 돈은 적어도 존엄은 채우는 곳이 내가 원하는 직장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앞으로는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요령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매일은 아니어도 간혹 어렵고 찌질할 내 취준생활을 적어보려고 한다. 





사실 여전히 취준생활을 쓰는 게 맞는 건지 고민된다. 취준에 있어서 나는 절대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없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유형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냥 쓰고 싶어서, 낙방을 잊고 싶어서 주저리 떠드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정치, 국제, 인권, 여성, 역사를 이야기하는 게 제일 좋다.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으면 세상이 커보이고 큰 얘기를 하고 있는 나도 큰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고민은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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