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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일기

일을 하게 됐다

*!*b 2021. 7. 14. 22:17

나는 여전히 경솔하다. 좋은 일 조금 생겼다고 동네방네 시끄럽게 떠들고 다녔다. 신문사 인턴이 됐다. 6개월의 단기간 계약직이다. 밥벌이 해야하는 나이이니 인턴된 게 대단한 자랑은 아니지만 고생 끝에 얻은 작지만 소중한 '내' 자리라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막학기를 비대면으로 보내고, 1월 1일을 취준 시작일로 정했다. 이슈달력은 어느 새인가 쓰기를 그쳤지만 신문은 매일 읽었다. 책도 매일 읽었고, 글도 매일 썼다. 나쁘지 않은 한국어 점수를 취득했고, 토익도 간신히 졸업 기준을 넘겼다. 졸업은 해야하는데 토익 점수가 안 올라서 접싯물에 코박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다행히 한 고비 넘겼다.

경향에 1차 서류를 제출했고, 서류도 못 붙었다. 뉴닉에 1차 서류를 붙고 과제 전형에서 탈락했다. 서울에 있는 작은 건설신문사에서는 대면 면접을 봤고(가지도 않을 생각이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모 신문사 인턴 공고에 지원했고, 면접을 봤고, 최종합격했다. 내 스펙은 뭐 별 볼 일없고 나는 오로지 '매일' 내일을 위해 한다는 성실함만을 강조했다.

작은 건설신문사에 지원할 당시 내 생각은 이랬다. '나는 경력도 없고, 스펙도 후지니까 일단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우자'. 때로는 무모함이 통하기도 하니까, 지원했다. 그러나 이 작은 건설신문사는 신문사가 아닌 광고사였고 기자라는 직업의 특수함을 앞세워 임금착취를 시도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을 것을 다짐했다. 여전히 오지선다형에 취약하지만 여러번 돈주고(시험 접수비) 실전 경험을 익히다보니 최소한의 점수는 획득하는 미미한 성과가 생겼다. 그게 5~6월 즈음의 일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해도 기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글의 바다에 빠져서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학교 비대면 기간까지 합치면 약 1년 반 정도 사회와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다. 안 그래도 소심하고 문제 있는 성격인데 좀 더 심해지고 있었다. 기자는 1년에 한 번 극소수만 뽑고, 채용과정도 4단계라 지난하기 짝이 없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했다. 이건 비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이었다. 그래서 밤마다 등골이 서늘하곤 했다.

어느 날은 절박한 심정으로, 어느 날은 자포자기한 상태로 이력서와 자소서를 넣었다. 마음엔 가고 싶은 곳이 분명했지만 손에 닿지 않았다. 그래서 내 마지노선을 맞춰주는 곳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어쩌다 얻어 걸려 인턴이 됐다. 처음엔 얼떨떨했고 출근한지 삼일차인 지금은 죽을 것 같다. 은퇴하고 싶다.

나는 기자가 되고 싶어 신문을 읽었던 게 아니라 그냥 신문을 좋아했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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