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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정치수업을 들을 때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독일에서 나치가 발흥한 후 어떤 교도소에 불이 났는데 그때 교도관은 불이 난 감옥에서 죄수들을 탈출시키지 않아 모두 타 죽게 만들었다. 나치가 패망하고 교도관이 죄수들(아마도 유대인)을 감옥에서 풀어두지 않은 죄로 재판장에서 처벌받았는데, 교도관은 "내 일은 죄수를 가두는 것이지 풀어주는 게 아니다"라며 자신은 본인의 일을 다한 것이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이 사실이 독일에 알려진 후 독일인들은 굉장히 충격을 받았는데,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설명했다. 악은 너무나 평범한 모습을 띄고 있어서 인간이 사고하지 않으면 그것을 행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나치에 복무한 교도관의 사례는 '생각이 절단된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이후 독일 사회는 주입식 교육 등 획일적인 답안을 요구하는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하면서 구구단조차 외우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힘을 기르는 데 방점을 찍는다고 들었다.

이때부터 한나 아렌트가 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밀리의 서재에서 우연히 이진우의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라는 발견하고 읽는 중이다.

흥미로운 부분이 정말 많은데 특히 절대악, 전체주의, 대중에 대한 논리가 그렇다. 한나 아렌트가 이것들을 말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생각하는 인간'이다. 그는 미래는 원래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롭게 미래를 만들어갈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자유'의 전제조건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이다. 또 전체주의는 경직된 사회, 강압적인 지도자만 떠올리기 쉽지만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것과 관련있다고 본다. 자유로운 인간이라면, 미래의 일을 만들어 가야하는데, 권력자의 말대로 예측하는 게 잘못됐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한대로라면...)

보통 우리는 예측불가능한 미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데 한나 아렌트는 그것을 고통이 아니라 자유의 영역이라고 본 점이 참신했다. 그러면서 예측가능한 미래를 전체주의의 신호이기에 위험하다고 보는 부분에서 그가 어떤 정치철학자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자유로운 인간의 면모라는 거다. 그러니 불안을 잘 보듬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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