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이 끝나고 출근을 시작했다. 부서장도 바뀌고 조직도 개편됐다. 전 부장과 일할 때가 너무 그립다. 출근은 싫지만 바뀐 자리는 좋다. 창문도 가깝고 천장에 달린 티비 1열이다. 회사 안쪽이라 화장실이 멀기도 하지만 그것도 나름 운동이 된다. 살이 5키로나 쪘다. 집에 체중계가 없어서 눈대중으로 확인했었는데 숫자보다 정확할 수는 없었나 보다. 코로나 확진자라는 말이 남의 얘기인줄 알았는데 내 얘기였다. 진짜 진심으로 다이어트할 때가 온 거 같다. 회사 건강검진도 코앞인데 큰일이다. 요즘도 역시나 드라마 보는 맛으로 산다. 지금 생각해보면 9~10월쯤 상당히 우울했는데, 그때 좋아하던 드라마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끝나서 그런듯싶다. 쉽게 말해 드라마 과몰입 후유증이다. 여러개 드라마를 동시에 보면 앓이를 ..
엄마는 비가 오면 맞아야 한다고 했다. 세상엔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시간이 앞으로 향하고 나이를 먹는 일은 좋든 싫든 빗겨나갈 수 없다. 그래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 떵떵거리며 사는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엄마아빠에게 아쉬운 소리하는 캥거루족이다. 이제는 굳이 애가 끊어져라 중심을 잡지 않아도, 균형이 잘 맞는 집이 됐다. 이제 떠나도 될 거 같은데 막상 용기가 없다. 미래도 어둡고, 하루하루가 익숙한 불안뿐이다. 27살도 이 상태이면 어쩌지, 이제 더는 어린 나이가 아닌데... 내가 바라는 나와 그렇지 못한 현실, 인지부조화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요즘은 블로그한다는 사실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친해지고 싶은 상대가 나를 더 잘 알았으면 좋겠어서, 내게 이런 면도 있다 알리고 싶어서 묻지도 않는 블로그 운영사실을 늘어놨다. 근데 요즘엔 블로그에 흉악한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기도 하는 데다 직장 안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내 속마음을 들킬까봐 걱정된다. 알다시피 직장은 각종 이해관계가 얽키고 설킨 곳이라 솔직함이 탈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인간관계는 스물 중반이 넘어선 지금도 어렵다. 잘 걷다가도 작은 조약돌에 걸려 넘어진다. 엉엉 울 정도로 아프진 않지만 힘들긴하다. 바보같은 실수에 내가 왜 이러나 싶고. 휴...
내 멘탈은 쿠키 경도와 비슷할 거다. 정말 잘 부스러고 가볍고 값싸다. 언제부턴가 패배감이 마음 한구석에 뿌리를 내렸다. 스스로를 부끄럽다 여기고, 숨기고 싶었다. 평생 자신감, 자존감 이런 단어를 떠올리고 살지 않을 정도로 비대한 자아로 살았었는데 모든 일에 뒷걸음질 치는 나를 발견하면서 한심하다 느꼈다. 이보다 더 가진 게 없었을 때도 내 발 밑에 세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포기하면 아쉬울 것들이 생기니 오히려 더 작은 사람이 됐다. 학생 입장에서는 뭐든 쉽다.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심지어는 덜 떨어져도 괜찮다. 돈 받는 직장인은 얘기가 다르다. 못하면 돈받고 일하는데, 연차가 쌓였는데 그거밖에 안돼?라는 말을 듣는다. 잘하면 또 잘하는 대로 고민이 생긴다. 어떤 사람도 10번 중 10번 모두 잘할 수 ..
얼마 전에 할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1년이나 지났다. 솔직히 말하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첫번째 제삿날에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없었다. 인삿치레만 했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다. 빨간색 십자가가 새겨진 고깔 모양의 삼베에 돌돌 묶인 모습이 할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물론, 할아버지도 생전에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지만 고모들의 뜻대로 그렇게 됐다. 죽어서 자식들한테 제삿밥 못 얻어먹을까 전전긍긍했던 노인네인데 마지막에 당신 곁에 남은 건 십자가였다. 기독교식으로 마지막을 모셨으니, 제사도 없는 것이 됐다. 원래 우리집은 제사를 모시고, 지내던 집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고모들이 기독교인이 되면서 여러가지로 일이 꼬였..
근래에 정신적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욱하거나 짜증이 치솟을 때가 많았다. 정말 오랜만에 연락온 친구에게, 심지어 십년만에 만난 친구에게도 다정한 답장을 하기 어려웠다. 그냥 '말'하는 일은 괜찮았다. 하지만 '문자'를 치는 일, '문자'를 위해 생각해야 하는 일, 이런 게 귀찮아졌다. 그냥 문자가 어렵고 싫증이 났다. 상대하고 마주 앉아 대화할 때는 최소한의 도덕성이 남아 대답은 꼬박꼬박 했는데,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는 나는 게으름과 무례만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집에 일이 없으면 회사에 일이 있다. 마음이 불편한 나날들이 반복되니 내 인내심을 지탱하던 나사도 하나 둘 탈출해버렸다. 뭔가 꺼림칙한 게 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런 게 쌓이니 인생 모든 게 의미 없이 느껴졌다. 나를 되돌아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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