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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너 메갈해?

*!*b 2017. 11. 25. 21:23

우습게도 내가 주위에 페미니즘 발언을 할 때 마다 듣는 소리다.

'너 메갈해?'

이 소리를 처음 들은 건 스무살 아니다 스물 한살 봄이였다. 이제 내가 겪은 차별에 대해 인식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짚을 수 있게 된 시점에서 난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꼬집기 시작했다. 그때는 '한남'과 같은 미러링 단어에 거부감을 느꼈을 시점이었다. 미러링이라 하지만, 결국 '김치', '된장녀', '맘충'과 같은 단어를 쓰는 성차별주의자와 도긴개긴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페미니즘을 지향했었다. 지금까지 어떤 뚜렷한 성과도 보이지 못한, 온건한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했었다. 그러나 온건한 페미니즘은 나에게 어떤 것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왜곡된 성의식으로 도처에 화장실 몰카와 성폭행과 성희롱은 만연했고 스스로 '김치'가 되지 않기 위해 자기검열만 더 열심히 했을 뿐이다. 게다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상'이 되기 위해 내 모든 자유를 스스로 억압해야했다. 자기만족을 변명으로 끊임없이 나를 제어했다. 그게 사회인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페미니스트였지만 여전히 해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온건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하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논리적으로 반박하려고 했다. 어떠한 미러링 표현도 사용하지 않았다. 남성의 언어로, 성불평등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그런 나에게 돌아온 말은 '너 메갈해?'였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다른 코르셋 안에 갇혀 버렸다. 메갈이냐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메갈이 아니야'라며 모든 하고 싶은 말을 뒤로 한 채 메갈이 아님을 증명하기 바빴다. 중요한 건 내가 메갈이냐 메갈이 아니냐보다 여혐 발언을 어떤 죄의식 없이 손쉽게 지껄인 저 사람인데. 나는 메갈이냐는 물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더 이상 그의 잘못에 대해 꼬집는다면 나는 메갈이 되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닫고 그의 틀린 말에 대해 속으로만 불쾌함을 곱씹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나의 언어를 갖기로 했다. 어차피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너 메갈해'라는 물음 앞에 모든 온건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입을 통제당하게 된다는 걸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왜 김치는 되고 한남은 안되나? 왜 일베는 되고 메갈은 안 되나?

사회적으로 '쓰레기 집단'이라는 소리를 듣는 일베는 몇년 째 번성 중이다. 그렇다면 메갈은? 폐쇄된지 오래다. 없어진지 1년도 넘은 메갈을 왜 자꾸 걸고 넘어지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유아인은 트위터에 '페미인 척하는 메갈짓 그만'이라고 멘션을 날렸다. 당신이 말하는 메갈짓은 도대체 무엇인가. 당신이 정의하는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왜 페미니즘의 방향과 방식을 마음대로 정의하고 그게 옳다고 강요하는가? 메갈은 왜 출현했으며 왜 미러링을 채택했는지 알고는 있는가? 자칭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그의 입에서 '메갈짓'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건 매우 충격적이었다. 김치가 없었다면 한남도 없었다. 성불평등이 없었다면,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여성이 억압받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메갈이든 워마드든 존재하지 않았다.

어제도 오늘도 '너 메갈해?'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제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차라리 메갈이 되는 게 낫겠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계속해서 낭떠러지로 굴러갈 바에야 그냥 메갈이 되고 성평등을 추구하겠다. 나에게 메갈은 성평등주의자, 여성인권을 위해 모든 사회적인 비판을 감수하는 정의로운 집단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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