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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왜 그렇게 큰 돈을 들여서 해외여행을 가는지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나는 벌써 2주간의 우즈벡을 끝내고 돌아온지 일주일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우즈벡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알아보니 내가 이용하는 '아스타나 항공'은 스탑오버 홀리데이라고 경유지에서 10시간 이상 보내게 되면 5성급 호텔을 1달러에 제공해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어 욕심부려서 아스타나(지금은 수도 이름이 누르술탄으로 변경, 카작 수도), 알마티(전 수도)에 들렸다. 그래서 가는 길에 2번, 오는 길에 1번 경유했다. 첫 번째 경유는 재밌었지만 나머지 두 번의 경유에서는 초죽음을 맛봤다. 경유는 한 번이면 족할 경험이다. 14시간을 공항에서 죽치고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다 보니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는데, 시간을 어떻게든 흐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시간은 어떻게든 앞으로 계속 간다.

막상 우즈벡에 도착하니 오랜 비행과 경유지에서의 긴 기다림 때문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쁘진 않았다. 비행기에서 오래 앉아 있은 후 밖으로 나온 것 뿐인데, 그 먼 길을 날아왔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여서 그런지 낯설지도 않았다. 다만 다른 점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 나는 우즈벡 사람들이 말을 할 때마다 그 밑에 자막이 달리진 않을까하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많다보니, 혼자 여행가면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크게 공감하지는 않았다. 해외 있다보면 다른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는데, 역시 나는 나였다. 한국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나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스로도 한결같음에 놀랐다.

다르게 얘기하면 거기서나 여기서나 내가(혹은 내 주변이) 공고하게 쌓아둔 성벽을 넘지 못한 것이니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쩌겠어 천성이려니 해야지. 그 점이 후회되기도 하고, 잘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정해둔 선을 넘는 일은 언제나 무섭고 또 너무 어렵다.

여행을 다녀오니 별에 별 생각이 다들고 글감도 아주 아주 풍부하다. 그래서 다들 여행, 여행 하나보다. 매일 매일 찍어둔 사진, 영상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또 보고 또 본다.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싶다. 일주일 지났으면 여행뽕이 빠질 때도 됐는데 왜 이렇게 안빠지는지 모르겠다. 토익공부 해야하는데 언제쯤 할련지.

교환학생 도전에 실패하고 나서 친구가 교환학생 말고 외국인턴에 도전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미처 하지 못한 생각이었는데 새로운 도전 목표가 생겼다. 근데 조금 알아보니 어떤 일이든 영어는 필수다. 이제는 영어를 그만 미워하고 사랑해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피해 삼 년 정도 도망쳤으면 오래 도망다닌 거다. 무려 문과생이.

백수된지 한 달하고도 며칠 째인 오늘이다. 딱히 돈 쓸 곳도 없어서 그런지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돈이 정 급하면 공장이라도 가겠지. 지금은 나에 대해서 고민하고 집중할 때라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 복학하면 진짜 취업길만 걸어야 하니까 돈 때문에 나를 들들 볶고 싶진 않다.

어제 부하라 포스팅 할 때 정말 엔돌핀이 샘솟아서 그 행복함을 만끽하느라 새벽 두 시에 잠들었다. 오늘은 더 공들여 사마르칸트 포스팅을 했는데, 어제만큼 신나진 않는다. 오히려 우울함에 가까운 것 같다. 벌써 갱년기일 리가 없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들쑥날쑥 하는 건지. 봄 타는 건가? 되도 않는 계절 탓을 해본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반복하면 재미가 급감하는 건가, 아니면 뇌세포 하나가 고장난건가. 나도 모르겠다.

불을 켜놓고 책상 앞에 앉아 노래를 틀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자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다시 행복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타자치는 소리를 참 좋아했다.

같은 생각이 많은 날이라 하더라도 두 가지로 나뉜다. 머리 속에서 나오는 말을 글로 옮겨 적을 수 있는 날과, 아무리 옮겨 적으려 노력해도 도저히 머리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날. 오늘 전자이다. 내가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한 변태같기도 느끼지기도 하는데, 전에 써놓은 내 글을 읽고 있으면 참 마음이 좋다. 글을 썼던 당시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모든 길을 헤쳐나와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내가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 때의 내가 정말 사랑스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변태임이 분명하다.

세상의 가벼움에 지칠 때, 길고 지루한 글을 쓰는 건 정말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습관이 나를 성숙하게 하는 것 같다.

아 그리고. 요즘들어 느끼는 건데 내 얼굴도 많이 바뀌는 것 같다. 기분탓인줄 알았는데 내 사진을 본 친구 동생이 나보고 성숙해졌다고 하더라... 열일곱에게 성숙해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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