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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글

대학의 첫인상

*!*b 2019. 4. 19. 15:42

나는 정시로 썼으면 광탈했을 대학을 운 좋게 수시로 붙었다. 대학 합격을 기다릴 때는 수시로 썼던 6개 대학 중 하나만 붙어도 정문 간판을 닦고, 삼보에 한 번 절하며 들어간다며 붙여만 달라고 기도했는데 막상 대학에 합격하고 나니 내가 붙은 대학이 성에 안 찼다. 사실 학교 생활을 게을리하며 적응하려 하지 않았던 것도 불만족에서 오는 거만함 때문이었다. 이 대학은 나를 품을 그릇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때의 거만함을 굉장히 후회한다. 이제는 어느 대학에 갔든, 어느 자리에 있든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임을 알고 있다.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욕심은 진짜 많았다.(지금도 그렇지만...)

그렇게 거만함을 가진채 새내기가 되었다. 학교 시설이나, 외관이나 솔직히 처참한 수준이었다. 학교를 바라보는 내 태도를 제외하고 봐도 학교 시설은 많이 낙후되어있었고 캠퍼스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작았다. 그래서 더 정 붙이기가 힘들었다. 그런 학교 안에서 나에게 유일하게 크게 보였던 존재가 있었는데 내가 새내기였을 당시 학회장을 맡고 계셨던 분이다.

그는 엄청난 외적 개성을 소유한 사람이었는데, 대머리였다. 당시 나는 새내기였고 주변에 대학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처지라, 마치 알에서 깬 새처럼 저정도 개성을 가져야만 대학생이 되는구나하는 인식이 박혔다. 나로서는 시도 못할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카톡 프사에서 느껴지는 생전 처음 보는 힙한 감성에 나는 꽤 주눅이 들었었다.

나는 상당히 아니, 그냥 '끼'라는 게 없고 어떤 멋있는 느낌을 내는 사진을 찍을 줄도 모르며 그렇게 자연스럽게 여러명의 사람들과 어울릴 줄도 몰랐다. 그래서 대학생 2~3학년 쯤 되면 저런 느낌을 낼 줄 알아야 하는 건가, 나는 저렇게 못하는데 어쩌지 고민하기도 했었다. 고민이 아니라 좀 불편한 그런 감정이 있었다. 느낌이나 감각이라는 건 타고나는 거지 노력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어쩌면 나는 내가 가진 대학네임밸류를 싫어했던 게 아니라 나에게 대학의 첫인상이 되었던 학회장의 모습에 기가 죽어 대학생활이 무서워졌고, 그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도망자 본성 어디 안간다.

내년에는 내 동생도 대학생이 된다. 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 실패에서 배우는 경험도 값지지만 역시 동생이라 그런지 지름길을 추천해주고 싶다. 나중에 말하려고 하면 생각이 나지 않으니 미리 적어놓겠다. 혹시 대학생이 꼭 해야할 일 등을 검색하고 있는 분들도 참고해주시면 좋겠다.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강박이 좀 있는 편이다. 외출을 갔다오면 손을 꼭 씻어야 한다던가, 알콜솜으로 폰과 이어폰, 노트북, 마우스, 화장품 등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을 닦아야 한다던가, 샤워나 양치를 안 하면 잠을 못 잔다던가,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는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던가, 적어도 2시 이전에 잠을 자야한다던가 등등.. 내 생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심한 불안감이 덮친다. 그래서 집 밖을 오래 떠나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새터나 엠티같은 학교 행사에 참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이 먹으니까 참 후회되는 일이다. 바깥 경험, 단체 경험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지어놓은 안전한 집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일을 많이 많이 경험 해봤으면 좋겠다. 꼭 학교 생활이 아니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도 좋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새로운 지역에 놀러가서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다. 인간은 추억을 곱씹는 맛으로 살아간다. 정말. 여행, 교환학생, 해외봉사 등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경험들이 매우 많으니 꼭 챙겨서 해보길. '함'에서 오는 후회보다 '안 함'에서 오는 후회가 더 크다.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동아리 활동, 대외활동을 꼭 했으면 좋겠다. 오래된 친구도 좋은데, 새롭게 만난 친구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 고등학교 친구는 어쩌고 대학친구는 어쩌고 구분하는데 나는 왜 그런식으로 친구를 구분하는지 모르겠다. 고릿적 진골, 성골 구분하는 것 같아 불쾌한 기분 마저 든다. 사람을 대할 때 높고 낮음이 없었으면 좋겠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니까 나보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더라도 같은 인간이니 어려워 할 필요없고, 나이가 어리더라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아마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엄청 많이 보게 될텐데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무리 가진 것 없더라도,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다. (라고 매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야 한다.) 나의 부족함을 절감했으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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