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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론(征韓論)은 1870년대 일본에서 제기되고 또 실행되기까지 한 일본의 대조선 침략 담론이다. 명분은 조선이 나라의 문을 닫고 일본과 국교를 맺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었지만 다른 속내가 있었다. 문명개화에 대한 사족의 반발을 조선 침략을 통해 잠재우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일본을 공격한다는 뜻으로 남벌(南伐)을 썼다. 정한론과 남벌에서 각각 '치다', 즉 공격하다의 뜻을 가진 단어는 칠 정 征과 칠 벌 伐이다. 우리말로 생각한다면 정과 벌에는 단지 치다의 의미만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한자가 가진 단어의 위계를 생각한다면 분명히 '다른' 단어다.
먼저 칠 정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복속시킬 때 사용하는 한자고 칠 벌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대항할 때 쓰는 단어다. 효종시기 제기되었던 북벌론을 생각해보면, 두 한자가 지닌 서열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정한론에서 征자를 쓴 일본의 건방짐은 그렇다치고 우리는 왜 남벌이라는, 스스로를 낮춰 생각하는 한자를 쓰냐는 거다.
한자의 위계까지 고려해 치밀하게 조선 침략을 준비했던 일본과 한자문화권 임에도 한자의 구분 없이 대강대강 '남벌'을 사용했던 조선, 정한론과 남벌 사이는 그런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근대의 승자와 패자를 나눴다.
사람이든 국가든 작은 차이가 결국 역사의 희비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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