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근현대사

김대중 '국민의 정부'

*!*b 2017. 5. 19. 22:06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을 거쳐 완성된 중요한 한국정치의 특징은 바로 지역주의라는 것이다. 박정희는 지역감정을 조장한 시초이고, 이러한 지역감정, 지역주의는 최근 대선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물론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중요한 정치적 요소이다.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심지어는 분열까지 조장하는 지역주의를 구상하고 또 현재까지 실현되게 만든 박정희의 과가 수업 중엔 부각이 되지 않아 아쉬운 점이 있어 글로 적어보려고 한다.

박정희는 구미 출신으로 영남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고 또 영남은 전체 인구의 30프로를 상회하는 인구구성을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는 넓고 비옥한 평야라는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국민 대다수가 농업인이었던 시기였기에 지주가 많고 넉넉한 형편이었으나 경상도는 그렇지 못했다.

영남지역은 박정희의 출생지라는 점, 높은 인구구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 전통적으로 호남에 비해 가난했다는 점이라는 삼박자가 들어맞아 박정희에겐 지역감정을 조장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을 것이다. 또 박정희 독재시기의 영남지방 중심의 공업화로 영남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여 충청과 호남을 앞지르게 되자 박정희에 대한 영남의 지지는 더욱더 확고해졌다. 영남 유권자는 박정희 지지로 산업화의 혜택을 대가로 권위주의를 감수하는 이른바 정치적 교환이 성립한 것이다.

63, 67년 선거에서는 단지 영남지역을 부각하는 형식으로 지역주의가 형성되었다면 71년부터는 현재 국민의 지역적인 편견을 완성한 반호남지역주의가 대두되었다. 왜 단순히 영남만을 부각했던 지역주의가 지역 간의 분열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먼저, 박정희의 강력한 정적인 김대중이 등장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이 호남출신이었기에 박정희가 호남을 홀대, 아니 박대했다고 한다면 한국의 정치가 너무도 단순해질 것이다. 김대중의 등장은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세력을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또 정치적 비판 세력뿐만 아니라 급진적인 근대화에 의해 억눌려있던 하층계급의 저항도 나타났다. 전태일 분신사건, 광주대단지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비판 세력과 하층계급의 저항과 함께 김대중은 박정희에 정면도전을 했다. 사회적인 비판이 확산되고 날로 김대중의 대중적 영향력이 높아짐에 따라 박정희는 조급함을 느꼈고 김대중을 호남만의 대통령이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렸다. 그전부터 간사하고 앞뒤가 달라 배신을 잘하는 호남사람이라는 지역편견은 있었으나 이는 사적영역에만 작용했을뿐 정치관계에서는 작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남인이여 단결하라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내용의 전단이 영남지역에 뿌려지거나, “야당후보가 이번 선거를 백제, 신라의 싸움이라고 해서 호남 사람들이 똘똘 뭉쳤으니 우리도 똘똘 뭉치자등의 박정희의 노골적인 반호남주의가 전면에 등장하였다, 지역주의는 정권유지에 불안감을 느낀 박정희가 자신의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장한 것이며 이는 박정희 독재정치의 잔재인 것이다.

호남의 진보에 대한 지지가 극도로 높은 것은 아직도 극복해야할 지역주의라 남아있는 것이라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지역주의를 경상도에 한정에서 본 내 좁은 식견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지만, 호남의 지역주의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때부터 시작된 의도적인 반호남지역주의 그리고 전두환의 5.18 광주학살로 볼 때 아직도 호남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이 호남의 표심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호남은 산업화시기 이촌 현상이 매우 두드러진 지역이다. 농업에서 공업으로 시대가 바뀌고 있으나 정부는 의도적으로 호남을 배제했다. 이에 젊은이들은 살기위해 도시로 향했다. 도시에서 자리 잡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일이었기에 이들 대부분은 도시하층민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개인의 권력 욕심에 의해 채택한 불평등한 경제성장 정책으로 인해 희생당한 자들의 대부분이 호남사람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의 학살로 눈앞에서 가족을 잃는 참극까지 겪었으니 누가 친박에게 표를 던지고 싶을까.


물론 선거공약에 따라 내 입장을 대변해줄 대표를 뽑는 것이 대의제의 기본이겠지만, 민주주의 역시 사람의 일이라 감정을 앞서게 된다. 그들의 아픔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호남인들의 압도적인 진보지지가 단지 지역주의의 색채를 강하게 띤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김대중정부에 지역주의가 완성되었다 평가하는 것은 적절히 않다는 생각이다.


'근현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무현 대통령  (0) 2017.05.23
노무현, 언론 개혁인가 탄압인가?  (0) 2017.05.22
이념전쟁의 희생양으로서의 한국  (0) 2017.05.18
역사인식의 새로운 시각  (0) 2017.05.12
첫 주권행사  (0) 2017.05.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