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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중을 담아야 공정이 빛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이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에도 공정한 사회인지에 대한 의심과 체념이 가득하다. 더 나아가 이제는 분노에 찬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공정을 요구하고 있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공정이란

공정의 공()은 사사로움을 뜻하는 사사 사()자에 나눔을 뜻하는 여덟 팔()자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글자로, 사사로움을 나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즉 공정은, 개인윤리와 법 사이에서 내 것을 사회와 나누며 인간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내 것을 나누고 지위고하의 구별을 넘어 인간을 존중하겠다는 공정의 정신은 근래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공정의 허점

젊은 세대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자랑하지만, 취업은 어렵다. 취업에 실패한 젊은 세대는 스스로를 탓한다. 능력 있는 사람만이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공정의 명분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 높은 교육을 일부만 누리고, 지원자의 극소수만 채용하며, 기간산업을 창출하지 못한 채 위축되는 등구조의 문제가 개인이 가진 원인을 앞선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시키는공정의 허점을 지적하지 못한다. 우리사회가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을 과신하는 탓이다. 결국 경쟁력 없는 자신에게 느끼는패배감에서 오는 절망은 청춘을 깊이 좀먹는다. 그래서 젊은 세대는 더 아프다.

그러나 얼음 한 조각 찾아볼 수 없는 사막 한복판에서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탄생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능력을 발굴하고 개발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따라서 능력에 따라서 부와 지위를 획득하는 사회구조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인간 존중을 위한 공정이라면 타고 태어난 인간의 차별적인조건까지 헤아려야 한다.

 

공정이 들썩이는 이유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노동자 2000명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밝혔을 때 가장 반발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와 취업준비생들이었다.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시험이라는 절차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노동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는 차별적인 고용현실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안중에 없었다. 인권을 지킨다는 공정의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로 썼을 뿐이다.

조국 사태도 마찬가지다. 검찰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검찰은 조국일가에 대한 표적수사를 자행했고, 언론은 그런 검찰의 스피커가 되어 열심히 검찰의 말을 옮겼다. 그 결과 조국의 기사는 국정농단의 주범인 박근혜의 기사를 압도했고, 조국은 대역죄인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검·언이 조국 일가의 공정논란을 끌어내기 위해 권력을 총동원한 과정은 과연 공정했는가? ·언의 짜 맞추기식 공정논란은 오히려 우리사회의 공정에 대한 회의만을 낳았을 뿐이다.

두 사건은공정을 앞세워 집단의 이익을 실현시키고자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공정을 요구하는 외침 속에는 공정을 빙자한 이익주장만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공정이 탄생한 맥락은 완전히 잊은 채로 강자가 약자를 공격할 때 사용되었다는 점도 지적해야한다. 결국 약자를 위한 담론이 되어야할 공정은 도리어 권력자들의 구호가 되어 들썩이고 있다.

 

공정담론을 키우자

능력주의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우리사회는 공정의 허점을 짚지 않고 형식적 평등에만 매몰되어 청년들을 자책하게 만들었다. 또 강한 집단이 약자를 향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칼로 공정이 쓰이기도 했다. 공정을 편의대로 해석해 사용하는 게 우리사회의 현주소다.

공정의 이름을 아무 데나 붙일 수 있게 된 까닭은 우리사회의 공정담론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불공정하다고 분노만 했을 뿐이지, 공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고, 자연히 사회의 공정담론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 존중을 위해 만들어진 공정을 사회담론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사적 이익을 위해 공정을 남발하는 집단을 경계하며 우리의 공정을 수호해야 한다. 공정은 차별받고, 배제된 이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외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점을 명심한다면 우리사회의 공정은 힘을 얻을 것이다. 공정은 인간 존중을 담아야 빛난다.

 

 

 

학교 수필대회에 제출한 글이다. 공정이란 주제가 오늘 경향신문 신년특집으로 나왔는데 생각나서 올려본다. 요즘 공정은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시각에서 많이 다뤄진다. 공정은 시험과 같은 '절차'가 아니라 시험장까지 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고려돼야 완성된다는 식이다. 

시대가 복잡해진 만큼 우리 사회도 약자의 불평등을 설명할 수 있는 담론이 더 촘촘해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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