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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는 능력에 비해 과도한 소비를 하는 여성을 두고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생겼다고 했다. 된장녀의 기원이 여성혐오라는 것을 알기에 불쾌했고, 지적했다. 교수는 자신도 여자, 남자 모두 과소비하는 세태는 같은데 여자에게만 유독 그런 명칭이 붙어 놀라웠다고 했다.

중국 출신의 교수이기에 한국 전반에 깔린 여혐 문화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한국의 젊은 세대 여성들이 그 단어에 얼마나 치를 떠는지도 몰랐을 테다. 같은 한국 국적의 남성들도 여혐을 이해하지 못하니 외국인에게 그를 바라는 건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윤지선 교수의 논문으로 '보이루', '느금마' 같은 단어의 여혐 맥락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보이루는 특정 집단에서 사용하는 인사말이고, 느금마는 경상도 지방 사투리일 뿐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여초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오조오억', '허버허버' 같은 단어의 '남혐'을 지적한다. 남성의 행동을 폄하하고 비꼬기 위해 사용한다는 이유다.

보이루 문제는 여성 게임 유저들이 '성희롱을 당했다'는 고백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여성인 것을 남성 유저가 알게 되면, 보이루라는 인사말을 건넸는데 이 단어의 사용이 여성들에게만 반복되면서 단어가 지닌 성희롱적 맥락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성 유저들은 여성 유저들이 예민하다며 일축하려고 했지만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고백을 정치화했다.

여성 개인의 문제로 '감춰졌던' 사회 구조를 고발하고 정치화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문제를 문제라 말할 수 있는 논리로 자리하며 변화를 추동하는 가치관이 된다. 문제는 변화에 제동을 거는 백래시다.

특정 집단이, 그들만의 언어로, 누군가를 얕잡고 놀리며 때로는 성적 희롱까지 보태 나누던 '말장난'의 실체가 사회에 폭로되었다. 공동체의 화두에 오른 이상 그들끼리의 말장난은 윤리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다. 더 나아가 명예훼손 등의 범법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장난을 가장한 혐오를 하지 못하게 된 특정 집단은 여초 집단으로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인터넷에서 밈으로 활용된 단어를 두고 '남혐' 혐의를 두었다. 그러나 여초에서 유행한 단어에 남성을 희화화하는 의미을 두고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성희롱이나 패륜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특정 성별을 성기로 표현하거나 부모에 대한 인격모독적인 뜻을 담는 것은 남초발 언어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이다.

여초의 단어와 남초의 단어를 동일선상에 둘 수 없는 이유다. 남초의 여혐 언어에는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까지 기만하며 재미를 추구하는 비열함이 담겼다.

그런 차이를 두고 같은 '혐오 단어'라며 뭉뚱그린다. 백래시의 시작이다. 물론 여혐단어가 사라진다면, 여초발 단어에 대한 비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보이루 사용집단은 여전히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와중에 여성 집단의 언어만 제재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최근 몇몇 사람들이 여초발 단어 사용을 '사과'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백래시의 진전이다. 페미니즘의 성과를 뒤엎으려는 시도다. 혐오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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