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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폭력은 닮았다(2)

*!*b 2021. 6. 13. 23:58

갈등은 세력이 비등한 집단끼리 다투는 일이다. 간혹 '젠더갈등'을 이야기할 때 따옴표를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여성 혐오가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는 의미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을 향한 반격이 전쟁범죄로 비화될 수 있는 국가폭력이었듯 '젠더갈등'이라는 단어의 남발은 결국 여성의 입을 막고자하는 폭력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갈등은 해소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극단으로 치우친 주장은 정리해서 적당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젠더갈등에도 '갈등'이 붙여진만큼 언젠가는 그 합의점을 찾아야한다. 그러나 합의는 온데간데 없고 노골적인 혐오만 눈에 띈다. GS포스터 논란, 박나래 성희롱 논란이 그렇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음은 물론 정작 여성이 겪는 성폭력, 차별 채용 등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일베의 독특한 손동작과는 달리 대중적으로 사용하던 손가락 모양을 두고 '메갈' 사인이라 의심하고, 구체적인 개인을 특정할 수 없어 성희롱이 성립될 수 없는 사건을 두고 '남혐'이라고 우기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페미니즘=메갈=남혐이라는 논리로 여성운동의 성과를 뒤엎고자 마구잡이 마녀사냥 중이다. '화력'을 모으기 쉬운 대형 커뮤니티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는데, 기업들은 이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과문을 게시한다. 기업의 사과문은 마치 '남혐'실존하며 메갈이 이를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완벽한 착시다. 혐오는 단순히 싫다는 감정 표출이 아니라 사회전반에서 차별당하고 배척당하는 현상이고, 혐오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특정집단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남혐' 혹은 '젠더갈등' 논란의 맥락에서는 차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생존에 대한 절실함이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가 거북한 남성들의 불쾌함만이 읽힌다.

이번 남성 커뮤니티의 집단행동은 실제 온라인 페미니즘의 궤적을 그대로 모방했는데, 불매운동이나 기업에 집단항의 하는 과정이 그렇다. 이 방식은 지나치게 성적이거나, 혐오표현이 포함된 광고에 문제를 제기했던 페미니즘 실천의 일환이었다.

그들은 페미니즘의 논리를 선택적으로 차용해 이번 억지스러운 논란을 일으키고 공론장을 오염시켰다. 여혐이라는 사회 현상은 전면 부정하고 '남혐'이나 '젠더갈등'이 문제라는 식의 접근으로 대화의 접점은 실종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이 로켓포를 맞고 이때다 싶어 팔레스타인에 폭격을 가했던 것처럼 페미니즘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도 이때다 싶어 페미니즘에 반기를 들고 있다. 모든 폭력은 닮았다. 이때다 싶어 축적된 분노를 엉뚱한 곳에 푸는 사람들과, 이때다 싶어 이들의 분노를 이용하는 정치인들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네타냐후 총리가 장기집권을 위해, 한국에서는 이준석이 자기 정치에 '갈등(실제로는 착시인)'을 이용했다. 네타냐후는 결국 연정수립에 실패하고 감옥갈 일만 남았는데, 당대표가 된 이준석은 끝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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