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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거부와 복종 사이

*!*b 2021. 6. 30. 23:38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은 작전 '화려한 휴가'를 성실히 수행했다. 반란 분자가 주동한 '광주사태' 진압을 위해 상부의 지시를 따랐으니 훌륭한 군인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당시 계엄군을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오히려 그들이 저지른 일로 무고하게 희생된 시민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하며 찢긴 양심이라도 주어 모아야하는 입장이다.

계엄군은 북한과는 상관없는 시민들을 누명 씌여 죽이고 부당한 명령에 복종했다. 광주항쟁 직전은 박정희가 죽고 서울의 봄을 맞으며 한껏 민주화 분위기가 일렁일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군은 부당한 명령을 무조건 따랐는데, '거부'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역사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여순사건'이다.

여순사건은 1948년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반대해 국군14연대 일부 대원이 봉기한 사건이다. 당시 제주에서 무장반란한 남로당을 국군과 미군이 진압했는데 이 과정에서 제주도민이 무고하게 희생당했다. 이승만 정부는 주민이 학살되고 있는 제주에 국군14연대 투입을 명령했다. 그러나 일부 군인이 이를 거부했고, 사건이 발생한다.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많은 1만 여명이 넘는 희생자가 생겼지만 '반란'이라는 오명을 안고 희생자의 명예 회복은 물론, 국가 폭력을 당했는 사실 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73년만에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이 발의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여순사건 특별법)이 통과됐다. 드디어 진상규명을 통해 국가 폭력을 반성하고, 희생자들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군이 명령에 복종하든, 거부하든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는 건 결국 군통수권자의 역할이 문제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여순사건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과 광주항쟁 당시 실력자였던 전두환의 권력을 향한 욕심이 한국사에 가시지 못할 상흔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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