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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기림의 날

*!*b 2021. 8. 14. 22:52

기림의 날 전날인 어제 처음으로 소녀상을 보고 왔다.
기림의 날은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97년 타계)가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한 날로 그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단체에서 할머니 정신을 기리고자 만들었다가, 2017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정식 국가 기념일이 됐다.

소녀상을 자세히보면 삐죽빼죽 아무렇게나 자른 단발 머리에 발 뒷꿈치에 든 채다. 광복한 나라, 우리 땅에서도 '불편한 존재'로 살고 있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1년 전에는 (아마도 불순한 의도를 가진) 보수단체에서 수요시위가 열리는 장소에 먼저 집회 신고를 하면서 충돌을 빚은 적이 있었는데, 이후 소녀상 옆에서 아직도 연좌 농성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이 일본군'위안부'를 둘러싼 모든 논란에 여성인권 문제가 굉장히 많이 개입되어 있다고 본다.

첫째, 사건은 대한민국을 식민지 삼은 일본이 식민지 여성을 '성노예'로 삼으면서 발생했다. 군대로 징집돼 전쟁을 치뤄야했던 군인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여성을 이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 개인의 인격은 중요치 않았다. 인권이 가장 처참하게 훼손되는 식민지 여성의 아픔이 일본군'위안부'문제에 있다.

둘째, 현재에도 작동하는 '순결한' 여성을 바라는 사회의 은근한 요구 또는 압박이다. 자의든 타의든 남성과 관계를 맺은 여성에게 보내는 사회의 시선은 아직도 냉담하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의 관계가 아니라면, 특히 여성에게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물론 과거에는 더 가혹했다. '화냥년'이라는 말도 공녀로 끌려갔다가 다시 본국에 들어온 '환향녀'들을 얕잡아 부르며 '욕'이 된 말이다. 식민지 여성과 비슷하게 나라가 힘이 없어 끌려갔다가 어렵사리 생존해 돌아온 여성들임에도 돌아오는 말은 '화냥년'이었다. '정조'를 잃은 여성은 살 가치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인식은 김학순 할머니가, 다른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이 자신의 피해사실 고백을 수십년동안 미루는데 영향을 미쳤다.
일부 보수단체가 몰려가 소녀상을 때려 부수려 하는 것도 이면에는 정조를 잃은, '말 없는 죄인'이 되어야 할 그들이 '감히' 역사를 들춘다는 데 불만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만약'을 생각해본다. 내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모던한 옷을 입고 또각 구두를 신고 공부하러 학교가는 '신여성'이었을까, 줄줄이 딸린 가족과 살림살이 걱정하는 '식민지 여성'이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상위층은 몇프로에 불과하니 나도 아마 평범한 후자의 위치에 있었을 거다.

위안부가 '취업사기' 당해 끌려간 거라고는 하지만 밥 걱정하는 절박한 상황일수록 속기 쉬운 법이다. 그러니 일본군'위안부'의 불행은 시대의 아픔이다. '기림의 날'은 그런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불행을 반복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미래를 그리는 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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