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10년여간 구독하던 경향신문을 끊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읽지 않아서다. 읽지도 않는데 매일 매일 쌓이는 신문지도 처지 곤란이었다. 회사 신문을 강제구독 해야하는 탓에 폐지 늘어나는 속도가 남들보다 2배는 빨랐다. 경향을 워낙 오랜 시간봤고 애착도 컸던 터라 몇달을 미루다 큰맘 먹고 해제했다. 하지만 미련과 달리 구독해제 후 일상은 이전과 똑같았다. 신문지를 구성하고 있는 기사 내용 하나하나의 무게와는 관련 없이, 정말 '신문지'라는 형태의 콘텐츠는 일상을 좌지우지하기에는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유튜브를, 넷플릭스를 아니면 멜론같은 음악앱을 해제하면 심심하고 허전해서 다시 찾게될텐데, 이제는 뉴스를 네이버에서도, 유튜브나 sns로도 접할 수 있으니 신문지의 공백을 느낄 틈이 없었다. 그..
크리스마스.. 그거 뭐 매년 오는 거, 감흥이 없어진지 오래다. 캐롤도 예전같았으면 10월부터 매일부터 들었을텐데 올해는 몇번 찾아듣지도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여행이라도 갈까했더니 여러 이슈때문에 좌절됐다. 우선 가기로 했던 곳에 변동이 생긴 게 가장 큰 이유였고, 패딩사느라 거금 지출해서 추가 비용을 지불할 여력이 없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남이섬에 있어야 하는데... 크리스마스엔 영화 나홀로집에를 봤다. 그냥 채널돌리다가 하길래 잠깐봤다. cnn 제작진이 너무 게으르다는 생각을 했다. 몇십년째 같은 편성이라니... 그래도 사람이 찾으니 어쩔 수 없는 건가... 먹은 건 그냥 냉동고에 있던 삼각김밥, 냉장고 속 양념된 소고기 등등... 시켜먹지도 않고 나가서 사먹지도 않았다. 케이크는 당연히 없었..
회사와 나를 분리하려고 무던히 애써왔다. 회사가 삶의 중심이 되는 건 괴로운 일이다. 내가 회사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는 날 바라봐 주지도 않고, 심지어는 안중에도 없는데 나만 애타고 진심을 쏟아봤자 결론은 뻔한 비극이다. 이런 슬프고 진부한 사랑이야기의 비극적인 조연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 회사와 나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왔다. 이 간극을 좁혀야 되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인사철이다. 무엇을 하려는 열정으로 가득한(또는 그렇게 보이는) 새사람이 들어온다. 물론 내 윗사람이다. 난 회사에서 말단 중에서도 말단이다. 회사에 들어온 지 햇수로 삼년이다. 첫해는 열정을, 다음해에는 의지를 잃었다. 솔직히 말해 회사 일을 바라보는 나는, 육체뿐인 시체다. 처음부터 내가 월급루팡이나 했던 건 아니다..
싫어하고 싶지 않은데 마음이 그렇게 안 된다. 그 사람이 보인 얄팍한 얄미운 행동들이 눈에 선해서,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이유를 일부러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그사람이 싫고, 거기에 이런 저런 이유를 덧대는 거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다. 미움과는 다른 거다. 뭐, 이유가 영 없는 건 아니다. 내 속에 꽁꽁 감춰준 열등감, 자격지심 이런 걸 그사람이 건드린 거겠지. 나는 그런 새까만 자아랑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성격이 좀' 등의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내는 걸수도...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달갑지는 않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나한테도 좋지 않다. 다 아는데... 그런데도 싫은 걸 어쩌나...
그가 퇴사했다. 나보다 그사람이 먼저 회사를 나갈지는 몰랐다. 그는 내 첫 선배였고, 팀장이었다. 그에게 배운 것이 참 많다. 나는 기사의 ㄱ자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그런 나를 기사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탈바꿈시켜준 인물이다. 그는 기자 일에 짙은 판타지가 있던 사람이었다. 현장에서 땀 흘리는 기자, 무모한 취재를 기자의 능력이라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게 틀린 건 아니었지만 팀의 속성과 팀원들에 대한 회사의 대우와 맞지 않아 반발을 샀다. 판타지와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해서 후배들은 그의 뒤에서 원망을 쏟아냈다. 물론 나도 그가 미웠다. 구체적으로 나를 이 회사, 이 부서에 잡아둔 것 자체가 미웠다. 선배라면 말해줬어야 한다. 이 팀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너는 정도로 가라고 따끔하게 충..
이주의 멍청비용 교통카드 놓고가서 택시를 탔다. 기본 요금 4800원. 서울-부천 왕복 지하철비보다 비싼 금액이다. 카드는 물론 현금까지 없어서 지하철 못 탈뻔했다가 착한 부천 역무원께서 빌려주셔서 겨우겨우 출근했다. 수요일은 약속이 있었는데 갑자기 폭우가 내려서 9000원짜리 우산을 샀다. 스콜성 비가 내렸던 여름에도 우산 한번을 안 샀는데... 마침 이날 이제 가을이니까 비 안오겠지하며 굳이 굳이 가방 속에서 우산을 빼고 출근한 게 화근이었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입으로 욕을 뱉었는데 생각보다 크게 말해서 옆에 계신 할아버지가 쳐다봤다. 원래 이렇게 경우없는 사람은 아닌데 몇가지 불행이 겹치다 보니 밑바닥 인성이 드러나바렸다. 이번주 고작 이틀 출근했는데 멍청비용이 너무 크게 들었다.
내 나이 스물일곱 가끔 술이 당기는 날이 있다. 보통 기분 좋은 날이 그렇다. 펍 같은 곳에서 맥주 한잔 기울이고 싶다. 친구는 한명이면 족하다. 나는 내가 술이 먹고 싶은 날이 올 줄 몰랐다. 맥주 한 캔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도 속으론 혀를 찼다. 이제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도, 대형 마트에서 술을 사도 아무도 민증 검사를 하지 않는다. 만 이년의 고된 회사생활이 내 활기를 쏙 빨아먹은 듯 하다. 사실 아직 퇴근하고 가볍게 술집에 가본 적은 없다. 내가 먹고 싶어서 술을 산 기억도 한번 정도다. 술을 완전히 알아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나에겐 알코올 디스오더 DNA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잠깐의 환각에 나를 맡기기는 싫다. 난 A가 좋아질 때면 A가 겁난다. 그래서 마음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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