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 졸업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졸업 2년 만에 학교가서 학위증을 받았다. 학위증은 인쇄된 지 오래돼서 색이 누렇게 바래버렸다. 받아야지 받아야지 했는데 거리가 멀어서 하루이틀 미루다 반차내고 동생이랑 같이 받아왔다. 동생이 꽃다발 몰래 사오지 않았을까 혹시나 기대했지만 헛수고였다. 맨몸으로 와서 밥사주고 커피사주고 아주 상전을 모시고 산다. 아무튼 이십대의 절반을 함께한 곳을 진짜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랬다. 친구들도 더 만들고 동아리나 학생회 같은 것도 해볼 걸 하는 후회를 매년 하고 있다. 아다리 안맞으면 세시간 훌쩍 넘는 곳을 사년간 통학하고 알바까지 꾸준히 한 나도 정말 대단하다. 지각도 결석도 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성실하게 다닌 거 같다. 요즘 타임루프물을 보다 보니 ..
(외)할아버지 크록스 사드렸다. 원래 운동화 사드리려고 했는데 배가 엄청 많이 나오시고 허리도 별로 안 좋으셔서 신고 벗기 편한 신발로 샀다. 크록스 만만하게 봤는데 8만원이 넘었다. 털 달린 것만 비싼 줄 알았는데... 저런 고무신 같은 푹신한 신발 찾으려고 백화점 몇개층을 오르락내리락 했는지 모르겠다. 돌고 돌아 결국 저런 고무신은 크록스가 짱이라는 걸 깨달았다. 신발이 필요없다던 할아버지는 쇼핑백을 보고선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새벽 이슬 맞아 가며 돈 번 보람이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돈만 더 많이 벌면 할아버지 여행도 보내드리고, 엄마 호강도 시켜주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할텐데... 근데 결국 생각을 하다보면 저런 건 핑계일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냥 그때 그때 내가 할..
팀장이 칼럼을 써보라했다. 솔직히 쓰고 싶지 않았다. 일단 복잡한 업무가 하나 늘어난다는 것도 싫었고, 연차도 낮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암묵적인 회사 기조와 내 시선이 달랐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나 눈밖에 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한 셈이다. 면담인지 뭔지, 영문 모를 갑작스런 팀장과의 일대일 점심에서도 팀장는 또 칼럼 데뷔를 해야하지 않겠냐며 칼럼얘기를 꺼냈다.(데뷔라는 표현이 웃기지만 팀장 표현이었다) 애써 못들은 척 했지만 연거푸 두 차례나 칼럼쓰기를 권유했다. 능력, 실력 향상을 위해서란다. '너 정도 연차이니 말해주는 거다, 4~5년차에겐 말도 해주지 않는다, 이대로 멈춰있음 결국 고여 썩게 돼버린다...' 물경력이 두려운 사회초년생에게는 압박, 좋게 ..
문득 억울해졌다. 내가 왜 열심히 해야하지? 열심히 해봤자 결과는 다른 사람이 채간다. 그때는 좋은 게 좋은 거지 했는데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건 뭔가 잘못됐다. 생각해보면 회사 다니는 만 2년동안 치이고 밀리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왜 그때마다 한 마디 못했지 자책을 하기도 했지만 조직은 개인의 항위따위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약했다. 부당함에 목소리 낼 용기도 갖지 못할 만큼. 그런 시간과 상황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요식행위의 반복, 일은 기계처럼. 나도 회사도 죽는 최악의 수다. 일을 좋아하고 나서서하는 사람, 한때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먼 꿈이다. 내 꿈은 돈을 버는 사람이 됐다. 내 자아를 실현하면서 경제적 이득까지 누리는 건 욕심이고 사치라는..
고백하자면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모든 일엔 내가 우선이다. 가끔 착한 일을 할 때도 있지만 평판까지 염두에 둔 일일 때가 많다. 그니까 내가 착한 일을 하건 나쁜 일을 하건 그건 내 이익에 따른 행동이다. 국제 정치를 선악이 아닌 이익으로 판단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나의 희생과 봉사, 기부도 그렇다. 사실은 내 기분 좋다고 하는 거다.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하는 거다. 얼마 전 한 아동복지센터에 오만원을 기부했다. 모든 생활을 절약에 초점에 맞춰 둔 상태인 나에게는 꽤나 큰돈이다. 이번 기부는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했다. 회사에서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있었고 이 구린 운세, 운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이럴 때 선행을 하면 나를 덮친 악의 기운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는 꽤 ..
오늘 떡볶이 소스를 사려고 퇴근 길에 이마트에 들렸다. 근데 왕모카번을 팔고 있어서 거금(11,500원)을 지출해버렸다. 저 모카번은 정말 맛있는데 맨날 사먹을 수 없는 귀한 빵이라서 어쩔 수 없이 3개짜리 세트를 샀다. 또 아귀포를 사는 데 10,000원을 썼다. 오늘 퇴근 길 총 지출액은 23,650원이다. 이제 용돈(총 15만원)이 13,000원정도 남았다. 일주일 동안 극도의 절약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점점 좀생이가 되어간다는 거다. 이렇게 주머니에서 한푼 안 꺼내고 살면 금방 인색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날 것 같다. 나는 꽤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쓰는 편이다. 그중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박하다'는 말이다. 이런 평가가 싫어서 친구들끼리 밥먹고 계산할 때 제일 먼저 카드를 내밀곤 했다. 덜컥덜컥..
을지로 직장인된 지 2년째. 아직도 못가본 카페들이 많다. 웬만한 곳은 다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또 새로운 곳을 발견했다. 영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카페다. 알바 강아지도 있는데 이름은 입시남(입이 시컴한 남자)이다. 어찌나 와서 먹을 거 달라고 보채는지... 오래된 한국 건물에서 서양 남자가 커피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장 내부는 앤틱한 느낌으로 꾸며놨지만 좀 근본이 없어보였다. 여기저기 비슷한 낡은 가구 모아놓은 느낌...나쁘진 않았는데 고전 유럽 스타일인 건지, 한국 개화기 분위기인지 아리까리했다. 커피맛은 별 다섯개 중 세개 정도. 드립식 커피였고, 내가 먹은 건 에티오피아였다. 종이 빨대로 먹어서 그런가 커피맛이 그닥 매력적이진 않았고 무난했다. 가격은 오천원정도다. 스콘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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