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인사청문회로 여야가 뜨겁다. 여당 시절의 야당이든, 야당 시절의 여당이든 인사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인듯 싶다. 노골적인 네거티브가 아니라면 여야의 지겨운 줄다리기는 옳다고 생각한다. 싸우는 게 그들의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일은 싸움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는 요소가 일정부분, 아니 대부분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노골적인 '반대를 위한 반대'가 계속되면서 그들의 '후보자 흠집내기'는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유한국당이 발굴한 후보자의 흠집이 비판이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후보자를 '억지로' 흠집내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과하지만 명분있는 자유한국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더불어 민주당도 적절한 대응을 취..
오늘은 2017년 6월 25일이고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지 67년이 되는 날이다. 오랜시간 학생으로서 살아오면서 한국전쟁에 대해서 배웠고 이제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어째 한국전쟁에 대해 깊이 알면 알수록 민족의 아픔보다는 정치적인 갈등에만 초점이 맞추며 뜨거웠던 감정이 점차 식어버렸다. 불운한 과거의 일을 반복하지 않고자 역사를 배우고 있지만, 정작 인간이 겪는 전쟁의 비극을 이해하는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이다. 역사는 이론적인 앎도 중요하지만 가까운 과거에 한민족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많이 아는 지금의 나보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며 형제의 비극에 대해서..
완전한 제도는 없다. 역시 우리의 탄핵제도 역시 완전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탄핵제도는 우리나라에 가장 ‘맞는 옷’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탄핵제도는 탄핵소추안 발의를 위해 국회의원 50인의 발의, 의결을 위해 재적 위원의 3분의 2 이상의 출석, 출석 위원의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에 탄핵소추안의 발의되면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탄핵이 결정하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탄핵제도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은 매우 지대하다. 헌법재판소는 ‘최후의 헌법수호장치’으로 대통령 탄핵인용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헌법재판소를 구성하고 있는 재판관들이 공정한 재판을 내릴 수 있는 가에 대한 비판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의 임기는 6년이고 국회, 대법원장, 대통령 각..
우리나라는 미군이 주둔해 있는 국가 중에 하나다. 나는 한 나라에 타국의 군대가 주둔해 있는 자체가 굴욕이라고 생각한다. 이유가 어찌됐건 스스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뜻하니까. 우리와 같이 일본도 미군이 주둔해 있다. GHQ가 전후개혁을 실시하면서 일본에 주둔했고 요시다는 "최소한의 무장으로 경제개발 추진하겠다"라는 요시라 독트린을 전후의 틀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안보는 미군에 맡기고 일본은 경제 성장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일본이 우리와 다른점은 미군의 주둔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 것으로 매우 가시적인 성과가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전에 애치슨선언으로 미군이 철수했다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다시 주둔하게 된다. 현재는 전시작전권도 미군에게 있는 상태로 자강안보는 그림의..
크게 문재인 정부가 어떤 방향을 지지하는지, 그러한 방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자리 잡으면서 대북정책의 윤곽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잇는 ‘햇볕정책’을 기본 기조로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북한 문제의 실마리에 ‘대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기보다는 대화의 방점을 두었다는 부분을 중심으로 보다 유연하게 대북정책을 펼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고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말..
증세 없는 복지, 창조경제 이러한 정책은 모두 빛 좋은 개살구와 같았다. 허울만 존재한 알맹이 없는 눈속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4년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 최순실의 등장이후 박근혜 정부의 무능은 더욱 낱낱이 드러났다. 청문회 당시 한 국회의원이 박 대통령은 두 시간이나 창조경제에 대해 논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로서는 큰 무력감이 들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씩이나 돼서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대해 설명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의 결의되고 탄핵이 인용되는 와중에도 많은 네티즌들이 박근혜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글이나 그림들이 다수 생성되었다. 나도 ㄹ혜라던지 병원에서 쓴 가명 길라임을 길근ㅏ임으로 표현하는 것을 처음에는 재밌게 보았다. ..
이명박 정부 때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에 비해 비교적 기억이 또렷하다. 이명박과 정동영이 대선에서 겨루었던 것, 광우병 파동으로 촛불집회가 열렸던 것, 종편이 등장한 것, 사대강 사업을 추진한 것 그리고 이명박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연관 있다는 ‘카더라’가 떠돌았던 것 까지 꽤나 구체적으로 생각이 난다. 이명박에 대한 나의 입장은 재임 중이나 전 대통령이 된 지금이나 여전히 매우 부정적이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의한 지역주의 감정이 때문이었고 시간이 흘러서는 이명박의 정책 추진과정이 모두 일방적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편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반대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 중 유독 노무현 대통령에게만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 것 같다. 정치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에 대해 논하기 전에 과연 그에게 정치할만한 환경이 조성되었는가도 살펴볼 문제인 것 같다. 노무현은 2003년 2월 25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러나 불과 1년 후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다.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이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구실로 말이다. 이는 새천년민주당의 주도 하에 진행되었는데 ‘고졸 출신의 비주류’인 노무현이 대선 후보가 되었을 때부터 당내 분열은 시작되었다. 국민경선으로 선출된 대선후보이지만 학벌과 정통성을 중시하는 기존 정치세력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여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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